새벽에는 감성이 터지는 시간이라지...
나는 참, 올빼미과인데 언젠가부터 곧잘 밤을 새었다.
남들이 다 자는 조용한 새벽의 이 고요함이 좋아서...
아침일찍 희뿌옇게 깔리는 안개도 좋았고.
무언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한 밤중.
신랑의 코고는 소리에 뒤척이다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코고는 소리 때문이라기 보다, 요즘 자꾸만 밤낮이 바뀐 생활이다 보니 밤에 쉬이 잠들지 못한다.
저녁 식사 후에 잠이 쏟아지는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밤새 뒤척여봐야 잠도 안오고...
새로 산 폰 안에 내 귀를 즐겁게 해 줄 음악이나 영화가 없어 다운받을 겸 해서 책상앞에 앉았다.
어떤 노래를 넣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그 이름.
살아 생전엔 내 관심을 그리 받지 못했던 가수... 신해철.
그렇게 훌쩍 가 버리고 나는, 내 과거가 후회스러울 만큼 그에게 빠져들었고
그다지 팬이 아니었음에도 내 귀에 익숙했던 노래들을 골라 폰에 담았다.
그의 철학적이고, 시적이고, 삶에, 미래에 대해 고뇌했던 그 절절한 가사들을 사춘기에 들었다면 내 사춘기가 좀 덜 힘들었을테지.
그가 죽고 나서야 그의 진가를 알아버린 난, 한참이나 뒤늦은 이 팬은, 이렇게 조용한 새벽에 그의 노래를 음미하고 있다.
그의 곡들은 거의 다 버릴 것 없이 명곡이지만, 가장 내 심금을 울리는 건 "길위에서"라는 곡이다.
머나먼 이 타지에서 아직도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내게 눈이 번쩍 뜨이게 해주는 곡이랄까.
신해철은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듣고 있자니 내 길이 점점 부끄러워졌다.
지난 30여년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다 자부했건만, 최근 몇 년은 그렇지가 못했기에..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하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그렇게 자꾸 나를 채찍질 하고, 앞으로 내달릴 수 있도록, 죽어서도 이렇게 살아 생전 팬인 적이 없었던 나를 위해
그는 그렇게 목놓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좀 과장되게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외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린다.
새벽엔 감성이 최고조로 치닫는 시간이라지. 그래서 그런가 과대망상(!)이 심해지는군.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편히 그 곳에서 쉬어요.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일을 하러 오가는 그 시간에도 길을 걸으며 나는 상념에 잠기곤 했다.
일기도 자주 쓰고, 무언가 내 영혼을 내가 잡고서 돌아보고 갈고 닦고, 공들이고 반짝반짝 빛나게 하기 위해서.
내 눈과 귀를 혼란케 하는 많은 매체들에게 내 시선, 내 귀를 빼앗겨 점점 더 혼자 생각할 시간이 줄어드는 요즘엔
이렇게 밤늦은 시간이 아니면 조용히, 곰곰이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가 참 힘든 것 같다.
TV는 원래 싫어서 일년에 내 손으로 TV전원을 켜는 경우가 손 꼽을 정도인데,
컴퓨터와 스마트 폰은 내 눈과 귀를 너무 옭아맨다. 언제, 어디서든.
내 영혼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정신차려 보면 나는 어느 새 잠자리에 누워있고, 하루는 훌쩍 지나있고,
일주일이, 한달이, 일년이 지나있다.
예전에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나를 철들게 했던 그 꿈처럼,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내 머리는 새하얗게 새어 있을 것만 같다.
시간만이 절대로 멈추지 않으니, 내 영혼을 내가 잡고,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야지.
그건 결국 나와의 싸움인 건데...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보다 못하구나. 난.
오랜만에 과거의 나를 돌아봤다.
내일 아니, 곧 몇 시간 후면 해가 뜨겠지.
할 일이 많다.
그나저나, 내 귀를 내 마음을 달래줄 노래와 내게 달콤한 잠을 선사해 줄 영화 한 편이 거의 다 옮겨졌으니 이제 다시 잠을 청해봐야겠다.